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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여름.

Stories
( younjin.jeong@gmail.com , 정윤진 )


이리 저리 갈대처럼 쓸려다니다가 뽑혀서 싸리 빗자루에 번들로 끼워져서 바닥을 쓸다 보니 어느덧 또 여름.
개구리 우는 소리 하나 없는 서울 송파의 사무실에서,

주인님 어지러워요



정신 사나운 사무실 책상 귀퉁이에 선풍기가 자리 잡았다.  ( 잘 보면 모닝케어도.. 쿨럭;; )



뒤돌아 보니 어느덧 환갑이더라는
어느 노인의 말 처럼

사무실 한 귀퉁이의 먼지 쌓인 선풍기가
여름이 왔음을 알려준다.

더운 동안 한참이고 혹사당하는 선풍기처럼
아무리 쌩쌩 돌아도 미지근한 건물 에어컨 처럼
그렇게 살고 있나 보다.

차라리 잠깐의 부채질이었다면
조금 더 시원했으려나.

힘들어야 조금 더 값진 것 같은 이치는
결국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

신기루 같은 환각,
내 처지 같은 선풍기를 끄고

퇴근한다.

그런, 2010년의 여름 시작



밤에 혼자 남은 사무실은 뭔가 야릇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조용히 혼자 영화를 볼 수도,  나즈막한 음악과 함께 밀린 업무를 처리 할 수도 있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절대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나 개인의 공간" 이 자연스럽게 만들어 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뭔가 묵직한 공기의 책상에서, '장기하' 의 '싸구려 커피' 를 튼다.


고녀석 참 가격 이쁘다



변색된 슬라이드 필름속
20대를 펼쳐본다

내 얼굴은 없는 내 사진
나만의 기억을 부르는 내 사진

하지만 이제는 없는
사진 속 사람들

찌들어 그립지도 않은
다만 아련할 뿐 인

중년으로의 길목


날씨 좋았지, 그랬지.



무언가 가슴속에 바람이
웬지 허용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하지만 정녕 기분 좋은 그런 바람이

살그머니 일렁인다.

갑자기 다리에 힘이 풀리는 가 하면
괜스레 멍해져 미소짓는

이 기분이 좋아.

고마워.


사케




사케의 달콤한 끝맛이 좋아.
천천히 오르는 알코올 기운도 좋아.

차게 먹는 사케는 상쾌한 맛을
데워 먹는 사케는 따스움이 전신에 고루 퍼지는 느낌을.

켄신 사부가 그런 말을 ,
"술은 언제 먹어도 맛있어야지. 술이 맛있지 않다면 마음 어딘가 병 들어 있는것이다."

내가 봤을때는,  켄신 사부가 니혼슈 ( 또는 사케 ) 를 먹어서 그런 소리 한거다.
소주 먹어 봐라.  ㅋ



가끔 된장짓




여름은 역시 달달하고 시원한 아이스커피 마시는 재미를 빼 놓을 수 없다.
닭장 같은 사무실에서 어찌 저찌 일하다가  마음 맞는 직원들과 즐기는 오후 즈음의 나지막한 티 타임은
꽤나 즐거운 시간.

여유의 중요성을 깨닫는 중.



몇 번의 주말과 하루,
은은하게 다시 퍼지는 삶의 향기가  몇년간 뚫려있던 무언가를
보이지 않게 막아 주는 느낌.

무엇이 어떻게 변하지 않아도 이대로도
이 느낌 만으로도

생긋한 요즘.



행복이나 슬픔 모두 한시적인 것을 알기에
그동안 힘들었던 만큼 한번의 부채질이 더욱 시원함을 알기에
어째 또 내가 몇년 살았나 보다 싶다.


( younjin.jeong@gmail.com , 정윤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