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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erfume of the Temptation, Interview with the Vampire
  2. Movie

Perfume of the Temptation, Interview with the Vampire

Stories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추석은 아무래도 '고전영화 다시보기'의 시즌인지라 그 의미를 나름 되새기기 위해서 94년도의 영화를 한편 보았다. 참 오래도 됬다. 이번이 벌써 열번째 정도 다시보는 영화이긴 하지만, 그래봤자 '다이하드'에 비하면 새발의 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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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덥지 않은 소리는 여기까지로 하고, 이번에 영화를 다시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생각 하나가 문득 들었다. 뱀파이어를 다룬 영화중에도 군계일학과 같은 이 영화, B급 영화의 공포를 주는 것은 아니더라도, 오늘은 좀 다른 부분에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제 1 권력'을 읽을때 느꼈던 그런 기분.

영화의 뱀파이어는 현실에서 무엇으로 치환 될 수 있을까. '피'를 삶의 근원으로 삼으며, '죽은 자의 피'를 마시면 힘을 잃게 되며, 동족을 죽이면 동족에게 죽임을 당하는 그들만의 율법, 또는 그 비슷한 불문율을 가진 존재들. 낮, 혹은 '대명천지', '밝은 곳', '사회의 드러난 부분' 등으로 생각되는 세상의 일부분은 그들에게는 죽음을 의미하며, 영속적으로 살지만 사실은 죽어있는, 또는 '현재 세대'를 반영하지 못하고 고립된 정신으로 자멸하는, 그래서 오히려 영속성을 잃는 모순적인 죽어가는 이들 또는 이미 죽어버린 이들. 사회에 소수로만 존재하며, 일반인에게는 없는 능력을 보유한 채 그 일반적인 사람들, 병들어 죽어가는 소외계층, 또는 취향에 따라 상류사회의 부패한 이들을 타겟으로 삼는 그들. 하지만 영화에서는 실제로 부유층이 '피'를 빨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푸들'은 피를 빨린다.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는 '영속성을 지닌 이들을 일반인들이 부러워하고, 그 영원한 젊음을 닮고 싶어 하지만 그들조차 지난 세상의 정신에 머무르고 고립된 채로 결국은 허무하게 살아가야 하는, 즉 영원의 삶에 대한 모순'을 이야기 하는 것 처럼 보인다. 이전까지 그렇게 보아 왔고, 또 그렇게 즐겨 왔으며, 하여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욕망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 라는 계몽적인 사상을 품고 있는 영화 정도로 생각 했었는데. 이러한 생각은 나이를 좀 더 먹어서인가 아니면 세상을 인식하는 시각이 좁아 져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 모든 특징들은 마치 '자본의 속성' 또는 '권력의 속성' 으로 치환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정말로 갑자기 들었다.

누구나 한번쯤은 생각하는, '로또를 맞으면 참 좋겠다' 같은 것들. 길거리에 우연이 마주치는 포르쉐(포르쉐 정도로는 약한가) 또는 페라리와 같은 차들을 보면 문득 들게 되는 '저 차 주인은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생각들. 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나도~' 하는 생각들. 이런 욕망들은 마치 뱀파이어의 아름다움, 또는 그들의 키스에 현혹되는 그야말로 일반인들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 자본주의 세상에서, 보다 자본으로서 가치있는 것들에 욕심을 품게 되는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와 같은 것들이 그대로 영화에 담겨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럼 반대로 나 스스로 조차 일반인(일꺼야)이기 때문에 경험해 보지 못하고, 그저 그럴거야, 하는 그들의 세상은 과연 어떨까. 인터뷰를 하는 크리스찬 슬레이터와 흡혈귀가 되어버린 브래드피트의 대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뭐가 보였죠?'
'말로 설명할 수 없지'
'천국은 어떠냐고 묻는 것과 같아. 인간은 알 수 없지'
'조각상이 움직이는 듯 했으나 가만히 있었고, 세상은 변했으면서도 그대로 였어.'
'밤의 아름다움에 눈물 흘리는 뱀파이어로 태어난 거야'

(양민 대표)_나도_너처럼_되고시퍼용_JPG



'흡혈귀는 암으로 죽는 일은 없겠죠?'
'아마 그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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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맞아 버리면, 그렇지 않을까? 한 순간에 권력을 손아귀에 넣으면,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바로, '세상은 전과 같지만,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는.

하지만 그렇게 생긴 능력(자본과 권력)은 스스로 무너진다고 영화는 말한다. 계속 그들의 세상(밤)에서 피를 빨고, 그들의 동지를 조금씩 조금씩 늘려가지만, 그들은 스스로 고립되며 긴 세월동안 새로움을 얻지 못하면 '껍데기'로서 퇴화된다.

그들 중 유일하게 특출난 흡혈귀였던 루이는 그들 사이에서 매력적인 존재이며, 비교적 격하게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해 가며 살아가는 캐릭터가 된다. 그러한 적응력은 '인간'으로서의 루이만은 버릴 수 없었던 본성에 의존하는 것으로, '인성'을 버린 흡혈귀가 그를 흡혈귀로 만들어 버리긴 했지만 빼앗을 수 없던 것이기도 했다. 그래서 루이는 모든 흡혈귀에게도, 또 모든 인간에게도 사랑받는 진정으로 양자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된다.

돈의 아름다움이란 정녕 강력한 것일 테다. 작게는 원하는 차를, 원하는 집을, 또 원하는 회사를 얻을 수 있으며, 보다 나은 교육을 통한 자기계발 또는 자손 계발을 이루어 낼 수 있다. 나아가,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다면 원하는 빌딩, 원하는 지역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것들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정녕 극소수에 불과 할 것이며, 그들만의 리그를 통해 조금씩 증식 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러한 사회에 들고자 하는 욕망, 그것은 또 극소수를 제외한 많은이가 가진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그 세계는 갇혀있기에 고립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그래서 꼭 좋은 것 만은 아니다 라는걸 '뱀파이어'라는 주제를 통해 이야기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돈의 아름다움은 다시 돈의 무서움으로도 바꿀 수 있게된다.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지 못할 때,  질병과 병마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지어 뱀파이어 조차도 피가 없다면 살아 갈 수 없다. 그렇게 사그러지는 생명들은 마치 레오나드(톰 크루즈)의 꺼져버린 촛불, 또는 그저 꺼 버릴 수 있는 촛불처럼 약하며, 유린당할 소지가 높다. 글쎄, 그것 역시 서로 물거나 지켜내어 생명을 지켜야만 하는 양랍할 수 없는 존재라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 또 그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과연 '악'으로서 규정 될 수 있는 것일까.

현실 말고 영화에서의 해답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대사에 있는 것 같다.

'당신은 답을 아는가?'
'뭐가 궁금한데?'
'우리는 무엇이지?'
'흡혈귀는, 흡혈귀일 뿐이야.'
'누가 우리를 만들었지?'
'알고 있잖아. (대화에서는 '레오나드'를 의미)'
'하지만 누가 그를 만들었지?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이 뭐지? 이 악 말이야'
'알겠어'
'극장에서 너를 봤지. 고통스러워 하더군. 그 여자에 대한 동정심으로.'
'남을 죽일 때, 너도 죽어. 피를 빠는 자신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군' 
'그래서 자신이 악하다는 건가?'
'그렇다면 선을 인식하면 선한 사람이 되나?'
'선과 악이 없다고?'
'아마도. 하지만, (촛불에 손을 스치며) 이 느낌, 이것만이 유일한 악이야'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나는 신을 몰라. 악마도. 본 적도 계시를 받은 적도 없고. 저주도 구원도 받은 적이 없어.'
'내가 알기론 그래. 난 400살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나이 많은 흡혈귀지.'
'두려워 하던 대로군..'
'넌 두려움이 너무 많아. 나까지 두렵게 만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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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는 마치 현실의 모진 진실을 깨달아 버린 사춘기의 수렁을 막 벗어난 청년과 80먹은 노인의 대화 같지만, 이 불가의 선문답 같은 어려운 대화는 그 속에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 않은가. 그야말로 어려운 선과 악, 도덕, 그리고 신에 대한 인류 역사의 모든 모진 난제들을 한꺼번에 다 던지고 있다. 하지만 결국엔, 현실에 대해 무엇도 확실 한 것은 없지만, 400년이나 살아도, 또는 그렇게 많은 부 또는 그렇게 강한 권력을 손아귀에 넣은 채로, 심지어 그들의 수장으로 살게 되어도 루이에게는 얻고 싶은 것이 없다는 점 만은 명확해 진 듯 하다. 후회는 없지만 희망도 없는 모습. '인간'이라면 버릴 수 없는 두가지의 모든 것을 잃어버려야 살 수 있는 뱀파이어. 하지만 그것을 버리고 살다보면 다시 언젠가는 삶의 이유를 잃게 되는 것도 또 역시 뱀파이어.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캐릭터는 일견 멋진 것 같지만 다음의 대화에서 자신 역시 이미 모순덩어리 임을 깨닫는다. 인간의 본성을 버리라 하지만, 그 스스로는 다시 인간의 본성을 루이에게서 얻으려 하는 것.

'내게 그것을 가르쳐 주겠다고? 후회 없는 존재가 되는 것?'
'우린 멋진 한 쌍이 되겠군'
'하지만 내가 그런 수업에 관심이 없다면?'
'뭐?'
'난 계속 고통 받고 있어. 번민(후회)만 가득해.'
'그런 감정은 떨쳐 버려'
'당신은 감정을 원하잖아'
'네가 태워버린 그녀를 애도하는 이 마음을.'
'난 절대....'
'네 짓이란 거 알아. 난 알아.'
'넌, 후회가 없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해.'
'가르쳐 준다는게 고작 그거라면, 난 내 식대로 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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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난 죽을 거야'
'아니, 넌 이미 죽었어. 내가 널 다시 살려주길 바럤지.'
'당신의 초대장이 아주 솔깃 하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거절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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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한 무리가 되었지만, 그들이 사는 방식이 더 많은 사람들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닫고, '피'가 아닌 다른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고자 하는 모습을 거부하는, 또 그 거부를 죽음으로 맞이하는 반데라스의 모습에서 결국 피보다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살아가는데 더 중요한 것이다 라는 주제를 던진다. 이런 주제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도 좋은가' 와 같은 자본의 자가증식 방식에 대한 너무도 심오한 질문이어서, 짱구를 아무리 굴려봐도 공돌이에게는 쉽지 않은 주제인건 맞다.

그런 생각이 든다. 모기가 흡혈을 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것인가. 어디에선가 읽었던 이야기 처럼, 사자가 사슴을 잡아 먹는 것을 악으로 규정하고, 사냥을 하지 않는 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하지만 우리는, 사람은, 공자 맹자의 도덕을 배운 우리는 또 그러한 짐승의 시각이 우리에게도 적용된다는 약육강식의 법칙에 그대로 순응해도 좋은가.

루이는 죄책감을 피하기 위해 또는 인성을 지켜내기 위해 짐승의 피로 인간의 피를 대신 했고, 존재 본연의 욕망 또는 유혹에 허물어져 클라우디아를 물고, 다시 심하게 자책하며 자각했다. 후에 클라우디아에게 가족을 만들어 주기 위해 다시 사람의 피를 취함으로서, 자신의 인성을 잃었으므로 '우리는 이제 서로 빛진게 없다' 한다. 그렇게 잃은 인성은 다시 반데라스옹이 클라우디아를 죽임으로서 '분노'와 '슬픔'이 되살아 나고, 그걸 통해 반데라스는 희망을 되찾고자 하지만 루이는 '인간의 감성'으로 그것을 거부한다. 이게, 영화에서 제시하는 유일안 대안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각 대사와 흐름을 보면 시나리오 또는 원작자는 사서삼경과 주역을 깨달아 버린 정말로 천재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또 쓸데없는 소리는 고만하고...

뱀파이어의 키스는 로또를 맞는 순간의 희열과 같을 것이다.
나는 과연 길바닥에 돌아다니는 그 수많은 키스의 유혹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오히려 그 유혹을 사무치게 쫒을 것인가.

아쉽게도, '피'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같다. 자유로울 수 없겠지. 그런 자유는 오로지 루이만이 느낄 수 있을 테지만, 그처럼 산다는 것은 결국 그가 말한대로 '허무'이상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거리를 걸으며 잃어버렸던 향기를 오랫동안 즐겼지.'


모두가 양민이거나, 모두가 뱀파이어라면 그런 세상은 과연 존재 할 수 있을까.

벤츠 CL63 AMG 의 스마트키를 가지게 되면 세상이 달리 보일까. 
영화 한편에 너무 쓸데 없이 많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난 대체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일까. 나아가,
난 왜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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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추석은 명작 감상의 시즌인 것이었다. 마지막 사진은, 웬지 마치 루이 같은 느낌의 현빈님.
남자가 봐도 므찌심.



다른 영화 뭐 또 뭐 없나.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Movie

Hobbies

(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힘든일이 몇가지 있어 정신적으로 좀 힘들게 지냈던 요즈음이다.  쓰던 책도 손을 놓았다가 다시 쓰는 중이고, 아는 분의 소개로 NEXCOM 2011 에서 세션도 하나 맡아버렸다.  설명하다 덜덜 떨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복잡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주말간 영화를 집에서 몰아서 봤다.



<하녀 (2010) 스릴러 | 한국 | 106 분>


원작은 못봤다. 다들 원작이 진리라 하지만 사실 굳이 1960년대 영화를 찾아서 볼 정도로 영화 매니아는 아니다. 당연히 원작에 대한 일말의 이해없이, OCN에서 주말에 해 주는 영화의 색감이 마음에 들어 2천원을 들여 다운받아 감상.  다운로드 받은 파일의 사운드나 영상의 품질이 썩 좋지 않아서 실망했지만, DVD 가 있다면 구매하고 싶을 정도로 마음에 쏙 드는 영화였달까.

작년 주말에 할일 없이 리모컨을 깨작거리고 있다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던 전도연님의 저 욕조 청소 장면이 머리속에 각인되어 있지만, 영화에는 이보다 더 흥미롭게 인물들의 심리를 묘사한 장면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어느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현실 사회의 계급구조에 대한 인식 없이는 이해하기 힘든영화" 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영화에서 나오는 "하녀" 로서 일하는 집과, 이혼한 주인공이 친구와 함께 지내는 고시텔 분위기의 집이 과연 현실에 동시에 존재하는 장소인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대조적인 장소의 퀄리티 차이에서 시작된다. 장소의 차이 뿐만 아니라, 럭셔리라는 단어조차 필요없어 보이는 마치 용이 살고 있다는 드래곤레어와 같은 분위기의 던전과 둘이서 싱글 침대에 몸을 뉘여도 거리의 네온사인의 깜빡임을 피할 수 없는 좁은 공간의 차이.

스릴러이지만 뭔가 부족하다는 사람들 대부분은 내용이나 화면에서 피가 튀기고 섬뜩한 추격자 스러운 전개를 원했나보다. 하지만, 어떤것도 자신이 원한대로 할 수 없었던 "미친" 하녀와, 하녀로서의 능력을 인정 받아 오랜세월 복종하였고,  검사가 된 아들을 가진 "인간승리" 를 한 정도의 취급을 당하는 늙은 하녀지만, 결국은 "못 배운 천한것들은 원래 그런 행동을 하는" 그런 정도의 사람으로 평가 되어 버리는 과정이 적나라하게, 하지만 예견되었던대로 착착 진행되는 이 현실같은 판타지가 우리가 매일 살고 있는 일상이라는게 느껴지는 순간 적어도 나에게는 엄청난 스릴러가 되었다.

사회는 어느 한 계급만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는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는 일이며, "우리 사회에 계급은 없어, 평등하니까" 라고 생각하는 착한 분들은 바로 "은이" 와 다름이 아닐것이다. 이런 차이를 극명하게 인지하여 오랜 세월 시스템을 구동시킨 "병진"이야 말로 시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표상일 것이며, 권력과 부에 빌어붙어 사는 주인 아내와 장모, 그리고 그 세습에는 어떠한 번식도 용인하는 살아있는 권력.  하지만 권력은 그것을 수행해 주는 사람 없이는 결국 무력하지만,  권력에 반기를 들려면 죽음이나 퇴직이라도 감수해야 하며, 결국 반기를 들거나 퇴직하여 떠난 사람을 얼마든지 더 많은 수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권력에 대한 단상은 이 영화가 사회에서 말하는 계급의 차이가 어떻게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움직이는지 적나라하게 나타내 주는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쁜지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취집을 가고, 보다 좋은 위치로의 신분상승을 노리며, 나보다 조금이라도 조건이 나은 상대와 결혼하고자 하는 이 모든 것들이 결국 성공하더라도, 이러한 무지막지하게 높이 있는 ( 또는 있어 보이는 ) 권력에게는 그저, "인간 승리" 정도의 작위를 부여 받지만, 수틀리면 "태생이 천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평가되는 현실.

심지어는 영화 전반부에서의 어느 여성의 자살에, 어느 누구도 경악하거나 굳이 관심을 두려 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연대하지 않는 우리의 현실 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조차 섬뜩하다.  그저, 누가 잡혀가고 누가 피해를 받고 누가 죽어가더라도,  껄끄러운 듯 담배 피우며 잠깐 신경쓰더라도 다시 하던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그런 하나하나 고된 삶.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몇몇 인상적인 장면을 되돌려 보며 난 대체 누가 하녀인지 헛갈리기 시작했다.

권력에 빌붙어 자손을 생산하는것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를 세습하려는 여자인지
시키는것/시키지 않는것까지 수발하며 권력이 남긴 잔반과 돈의 대가를 즐기는 늙은 하녀인지
본능과 가까운 꿈을 가지고 하녀생활에 만족하던 젊은 하녀인지.

영화가 계급을 닮았다고 하면,  그럼 나는 어디에 속할까 생각해 보니, "병진" 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비난 할 만한 상대인 장모와 장모같지 않은 하지만 장모처럼 될 수 밖에 없는 아내가 결국 하녀가 아닐까.  이정재님은 결국 "너희들은 씨받이 일 뿐"이라는 뉘앙스의 대사를 우아하게도 피아노를 치면서 장모에게 뱉는다.

궁금해서 감독의 이야기를 찾아보니, 역시나.

[ 감독의 변 ]

그네의 직업은 입주 가정부.
우리들 누구라도(!) 그러하듯(!) 하녀입니다,
그네는 하루 종일 하녀 노릇에 충실합니다, 나름 프로페셔날이니까요.
그러나 꼬인 마음이 없는 그네는 언제나 웃는 낯에 백치처럼 순진합니다.
그네는 맘 속 깊은 욕망에 귀 기울이고, 그 작은 욕망을 솔직히 좇습니다.
그네는 하녀지만, 또 하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네.

잔뜩 꼬인 여자.
그녀의 동료 늙은 하녀는 뼛속까지 하녀 근성에 물든 여인이지만,
다행히 그네는 이제 그 하녀 노릇을 그만 둬 버립니다. 축하!

이 두 여인을 하녀로 부리는 부자집 여인네들.
그네들은 자신들이야말로 하녀라는 걸 꿈에도 모릅니다.
모른 채, 딸에게 손녀에게 자신들의 하녀 근성을 고스란히 대물림 합니다.
슬프고도 끔찍한 일이지요.

백치처럼 맹해 보이기만 하는 우리들의 주인공,
그네가 끝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건 무엇이었던가요?

그건
우리들이 매일매일 서로 주고 받으며,
괴로워서 발버둥 치며 잊으려 하지만,
잊지 못하고 대충 뭉개고 살고 있는,
우리들의 보드라운 성감대에 눌러 붙은 굳은 살
같은 것.

출처(ref.) : 영화포스터 - 하녀 (2010) 스릴러 | 한국 | 106 분 | 2010-05-13 - http://bbunhae.com/board/movie_3/9203
by 뻔해닷컴


내가 좀 세상을 비관적으로 봐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난 사람들이 전도연님이 분했던 "은이" 같기 보다는, 오히려 윤여정님이 분했던 "병진" 같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복잡하고, 꼬여 있으며, 돈과 권력에 순종한다. 

이 영화를 막장이라고 하시는 분들 많은데, 난 막장의 정확한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상식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무언가 꼴같지 않은 일"과 비슷한 의미라면, 맞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세상에서는 그런 막장스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닌, 아니 실제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영화가 그런 현실을 어느정도 반영 했다면 막장으로 봐도 무방하지 않겠나.

한가지 영화에서 궁금한것은, 하녀가 죽고 난 이후 새로운 집에서 유일하게 하녀와 유대를 가졌던 딸아이의 시선이다. 

 
<Full Meta Jacket | 1987 | Stanley Kubrick>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내용은 물론이거니와, 그 안의 음악적 요소들도 참 좋았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입대하는 청년들이 머리를 삭발당할때 나오는 흥겨운 멜로디, "Hello Vietnam". 그리고 하트만 교관이 구보나 제식훈련을 하며 붙이는 군가와 구령, 그리고 전장에서 미군이 행군을 하면서 부르는 MICKEY MOUSE, 엔딩에 사용된 반전 음악의 대표주자 Paint it black 까지. 

이 영화는 대표적인 반전영화로서, 평화라는 입발린 목적으로 살인을 자행하는 전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베트남전에 대한 정치/군사적 배경을 뒤로 하더라도 포스터의 헬멧에 그려진 평화의 심볼과 총알, 그리고 Born to Kill 이란 문장은 영화의 모든것을 말해주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영화가 전쟁에 그다지 호의적인 입장의 영화는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반부는 미국의 젊으신 청년분들이 영광스럽게도 미 해병대에 입대하여 훈련을 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안에는 고문관도 있고, 교관의 의도를 미리 파악해 버리는 단 한명의 똘똘이가 있으며, 나머지는 모두 일반적인 빠릿한 훈련병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람들이 이름대신 하트만이 지어준 별명으로 불리우며, 제식, 사격, 체력훈련, 내무생활 등의 군대생활 전반에 익숙하게 만드는 훈련을 하는 와중에 이 훈련병들의 인권 변화로 인한 심리상태가 어떻게 변해가는지 아주 디테일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고 나는 생각한다. )

사실 군대나 군복이라는건 참 신기해서, 나도 현역에 있을때는 까까머리 깎고 훈련소에서 처음 발 맞추어 걸어가기가 참 힘들었고, 걷는발과 앞뒤로 휘저어야 하는 팔이 같은 박자에 움직여서 "장애인이냐" 이런 소리를 듣기도 할 정도로, 갓 군복을 입혀 놓은 청년들은 밖에서 무얼 하고 어떠한 학력을 가지고 있던지 간에 대부분이 띨띨해 보인다.
영화에서 보이듯 왼쪽 오른쪽 같이 쉬운 개념도 갑자기 헛갈릴때가 있을 정도로, 신병은 항상 허름해 보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신병들을 굴리고 굴려 하나의 그래도 삽질은 할만한 군인으로 만드는 것이 이러한 훈련소의 목적으로, 군대 자체가 가진 특성과 함께 당연히 친절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람들을 교육한다.  이런때의 폐혜는 당연히 나타나지만, 자연스럽게 묵인된다. 해서 대부분은 힘들어하고, 그 중 일부는 괴로워 하고, 또 그 중의 일부는 자살한다.  이러한 훈병의 심리적 과정이 미군식으로 잘 나타난 것이 바로 이 풀 메탈 자켓 이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 전반부는 즐겁다. 지난 군시절이 생각나는 것도 있고, 하트만이라는 교관의 거칠지만 뭔가 해학적인듯한 말투는 내가 그 앞에 서지만 않으면 얼마든지 즐겁게 감상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는 점점 개인의 잘못을 그 조직에 묻고, 그로 인해 "알아서 저녀석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너희 모두 죽을 줄 알아" 라는 군대스러운 협박을 가하는 순간 불편해 지기 시작한다.  이는, 흔히 고문관이라 부르는 군대 적응이 남달리 늦거나 안되는 "우리 중의 일부" 에게 우리 스스로 동기를 부여하게 끔 한다. 하지만 이 동기라는건 절대로 친절한 것이 아니어서, 쌍팔년도 한국 군대면 "내 밑으로 수공구실 앞으로 집합" 이라던가, 훈련소 시절의 야외 화장실에서 몰래 담배피던 동기 때문에 12월 철원에서의 새벽 돌바닥에서 상의 탈의 한채로 포복을 할때 느껴지는, 바로 그런 살의 에서 비롯된 매우 불친절한 동기 부여 방법인 것이다.  당연히 이러한 동기를 부여를 체험한 고문관이 "아 내가 참 잘못했구나" 라고 느낄리 없다.  이러한 일련의 감정 고조의 변화는 꼭 내가 겪었던 것들과 비슷한 불편한 기억들과 겹치면서, 몰입하며 안스러운 감정이 들게 된다.  이러한 감정이 전반부에서 감독이 연결하고 싶었던 반전에 대한 메세지가 아니었나 싶다.

후반부에서는, 어느 한 저격수에게 분대원 세명이 사살당한다.  이에 분개한 군인들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결국 이 병사를 찾아 내게 되고, 주인공은 이 초등학생 정도인 저격병을 뒤에서 쏠지 말지 우물 쭈물 하다 기회를 놓치고(총알이 걸렸는지 총에도 문제가 있기는 했다) 결국 다른 병사가 쓰러트리게 된다.  수발의 총알은 맞았지만 아직 살아있는 어린아이 저격병은 나를 죽이라며 저주를 퍼붇고, 미군은 쥐에게 살점을 뜯기다 죽도록 놓아주라고 하지만 주인공은 갈등끝에 아이를 죽이고, 동료들에게 독한놈이라는 찬사를 받는다.

전쟁이란건 내 옆의 사람이 죽는다.  미군의 군가에도 우리나라의 군가에도 전우의 시체를 넘는다는 말은 꼭 있다.  이런 영화는 전쟁 그 자체에 반대하는 경향이 짙어서, 사실 분단국가에서 전역하고 예비군 다 하고 민방위를 기다리는 내게는 이해 할 수 있는 부분도, 또 이해하지 않아야 하는 부분도 있는건 아닐까.  내 옆사람의 죽음에 대한 분노는 결코 내가 이후 처음 맞이하는 적이나 포로를 죽일 면죄부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 그렇게 되면 누구나 그렇게 성인 군자가 될 수 없는 것, 또 그런 상황으로 몰아가는 환경이 바로 전쟁, 그래서 전쟁이 지나고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더 괴로운 것이 아닐까.

영화는 전반부는 비교적 가볍게 볼 수 있으나 고문관의 자살 직전의 섬뜩한 눈빛 이후, 후반부는 굉장히 대놓고 관객에게 질문한다.  전쟁이 대체 뭐냐고.  전쟁에서 넌 뭐가 될 수 있겠냐고.  그런 전쟁을 해야겠냐고. 
부대 이동할때 우리 부대도 가끔, 정말 아주 가끔, 일년에 한 16번 있는 훈련중 한번 정도는 만화 주제가를 부르기도 했다.  영화의 종반부에도 미키마우스를 찾아대며 이동하는 부대를 보노라면 쓴웃음이 난다.

역시 난 영화 평론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스텐리 큐브릭이란 감독은 정말 대단한것 같다 라는 생각.


<PLATOON | 1986 | Oliver Stone>



이 영화, 군대 가기전에 예전에 봤었다.  베트남전 영화에 풀 메탈 자켓 때문에 불이 붙어서 연달아 보게 된 영화.
풀 메탈 자켓과 비슷하게, 영화는 전쟁에 참여한 한 개인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하지만 플래툰에서는 고향의 할머니에게 부치는 편지를 읽는 형식을 빌어, 독백 같은 나래이션이 분위기를 더한다.  풀 메탈 자켓과 플래툰 모두, 주인공들이 먹물이다.  가방끈이 남들보다 엄청나게 길지는 않지만, 적어도 글은 제대로 쓸 줄 알고 인간과 전쟁에 대해 영화에 보여지는 그의 주변 인물들 보다 깊이 생각한다.

베트남전은, 내가 왈가왈부 할 세대는 사실 아니긴 하지만 그때 당시의 미군 내에서는 "장교 죽이기" 같은 일이 비일 비재 했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소대장은 무시당한다.  여기에는 전장 통신이 발달하면서 전투에 지휘관이 전선보다 뒷쪽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감놔라 배놔라 하는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감정과 동시에, 1년 현장근무 후 타 지역 또는 보직으로 옮겨가는 그런 장교들을 신뢰하지 않았던 시스템적인 문제도 있었다고 한다. ( 딴지 일보에서 "펜더" 로 검색하면 보다 깊은 시야를 제공하는 기사들이 많다.  독자의 한명으로서 급 존경 )  아무튼..

소대장은 무시당하고, 이로서 전투경험이 풍부한 하사관급 군인 두명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된다.  독하고 아귀같으며 짬밥 대우를 해 주지만 전투앞에서는 전투 목적 달성이 최우선인 민간인 사살도 필요하면 한다는 살벌한 고참과,  신병이 나자빠져 죽지 않도록 보다 신경쓰며 민간인에 대한  살상은 절대 용인하지 않는 친절한 고참이 그 둘이다.  당연히 이 둘의 갈등이 발생하며, 그를 따르는 사람들 간의 불화와 이런 상태에서의 조직이 불리한 전투에 임했을때의 모습을 현장감 있게 보여준다.

플래툰 역시 전쟁의 비참함을 다룬 반전영화이며, 이는 큰 맥락에서 일반 관객인 내 눈에는 풀 메탈 자켓과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가 다르지 않은 듯 하다.  다만, 풀 메탈 자켓에서는 먹물의 느낌에서 전쟁에 참관하는 듯 하지만 (주인공 조커의 병과도 보병은 아니다) 플래툰에서는 대학을 나온 일반적인 사람이 보병으로 전쟁에 투입되었을때의 느낌으로, 전장에 대한 감성이 보다 분명하게 느껴지는게 좋다고 할까.  물론, 직접 겪으면 아주 힘든 일이겠지만.

포스터에 나온 엘리어스의 죽음은 이러한 조직내부의 갈등으로 인한 비극이다.  그들은 서로 옳다고 믿는바가 있으며, 어느 누구도 서로를 틀렸다고 말하긴 힘들다. 우리의 조상들이 경험한 바와 같이, 전쟁에 인권은 없다.  하지만 전쟁을 수행하는 인원이 인권에 대한 존중이 없다면, 그건 살육과 다르지 않으며 전쟁 이후 붕괴된 인성이 제자리를 찾아가기는 힘들 지 않을까.

복잡한 생각 하지 않고도 영화 자체로 볼만 하다.  올리버 스톤의 전쟁영화 시리즈중 첫번째 라고 하지만, 사실 그런거 다 생각하고 영화 보면 힘들지 않나.  화면에서 던져주는 주제에 대해 간단히 생각하고 필터링 하는 소소한 재미가 관람일테니 말이다.

참고로 영화의 포스터는, Art Greenspon 이라는 사진가가 베트남전에서 찍은 장면을 재현 한 것이라 한다.  이는 101 공수사단의 병사들을 구급헬기로 옮기는 장면이라 한다.  ( 이 부대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의 그 부대인갑다. )


 
이 외에도 Apocalypse Now redux, 이웃집 남자 등을 봤지만 모두 다 쓰기에는 기력이 딸리므로 패스.


낼 부터는 발표 준비나 더 해야 겠다.


(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