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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산 - 현대 퓨전사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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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윤진, yjjeong@rsupport.com )

        
 

이산-MBC

이산-MBC





사실 드라마를 그리 즐겨보는 편이 아닌데
어느날 퇴근을 하고 어머님이 보고 계신걸 저녁을 먹으면서 잠깐 보게 되었다.

관심이 생겨 최근 1편 부터 종영회 까지 모두 보았는데,
이건 사극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만약 역사 그대로, 조선왕조 실록이나 기타 역사적 문헌 자료에 충실하기만 했다면
그게 과연 극으로서의 즐거움과 감동을 줄 수 있었을까.

실제 역사에서도 결론은 명확치 않다.  사학자들의 많은 근거에 관련한 추측들이 있으며
벌어졌던 일에 충실 하겠다 마음 먹어도 하나의 결론을 따라가자면 다른 결론을 주창하는
많은 이들에게 돌매를 맞지 않겠는가.

의빈성씨의 사망에 효의왕후가 개입 되었을 수 있다는 등, 정조의 승하와 독살이 관련 되었
을 수 있다는 등. 까놓고 보면 썩 아름답지 만은 않다.

물론 여러 사극이 방영 될 때마다, 그에대한 말은 참 많다.  사실적 고증이 부족하다거나,
너무 지리 하다던가 하는, 재미와 역사 사이에서의 줄타기에 실패한 것들이 너무나 많지 않던가.


오늘 문득 호기심이 생겨나 이런 저런 문건들을 보던 중, '이산-정조가 사극이 아니라 현대극
인 이유' 라는 김헌식 문화평론가 의 컬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컬럼이 내가 오늘 이런 잡담을 끄적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  조선시대 또는 기타 통칭 '사극' 이라는 이름을 걸 만한 시대적 배경으로
역사속 실존 인물에 대한 일생을 그릴 때에는 그 인물 자체에 대한 관객의 오해는 없도록
하여야 하는것이 맞다고 본다. 그것이 퓨전이던 순수사극이던지, 고려 시대 사극에 조총을
소품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 처럼 말이다.

그 시대의 근간이 되는 사상을 바탕으로 인물들의 언행을 묘사하여야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이산은 말투와 외모등  현대인의 의식속에 희미하게 자리잡고있는 그 출처도 불분명한 유교적
통념에 충실하지만, 정작 그 시절의 정조가, 정약용이, 홍국영이 어떤 사상으로 어떻게 살고
죽어갔는지에 대해서 잘못 말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나 싶다.

만약 먼 미래에 현대사회의 쇠고기 수입 반대에 대한 촛불집회를 묘사한다고 했을 때
현직 대통령의 입장에서 극을 그리게 된다면 국민적 사상은 뒤로 한채 국가간의 이해관계와
외교, 또 그들의 입장에서 우매한 국민을 설득하는 모습들만 그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촛불 집회에 참여한 한 소녀의 이야기나 한 전경의 모습도 그릴 수 있을 것이지만 말이다.
그것이 수입되면 국민 생명 또는 보건에 지장을 받을 수 있다 라는 근본적 의식을 배제한다면
이것은 우리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한 오해가 아닌가. 또한 미래의 사람들이 카톨릭적 사상이나
불교적, 또는 공맹사상을 가지고 현대를 해석한다면 이 역시 심각한 오류를 범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정조를 성군으로 회자되는 것은 조선시대 전반의 사상인 성리학에 충실했던
주군이었기 때문이며, 이러한 이유로 이산을 더 잘 묘사하기 위해서는 성리학이 무엇인가에
대해 현대 사회와 다른 문화의 차이로서 설명되어지고 그를 바탕으로 이런 저런 치적과
조정 중신, 왕실간의 대립 구도를 그렸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우리가 가보지 않아도 미국영화, 일본 영화를 통해 아,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 구나
하고 이해 할 수 있듯이 말이다.

당시대의 정조 이산이 어떤 사상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았는가 보다, 현대 한국인의 일반적
으로 떠오르는 좋은 군주의 이미지로서 정조는 어떠한 개인이었는가에 대해 더 촛점을
둔, 현대인의 재미에 대한 코드와 딱 맞아 떨어지는 드라마, 그래서 현대 퓨전사극이 아닐까.

누구나 '내가 왕이라면' 하고 생각 했을때의 환상을 TV로 보여준 것, 그것이 이산이 아닌가.
길게 뭔가 두서없이 떠들었지만, 결국 그시대의 왕과 현대 사회의 치자가 가져야 할 덕목은
크게 다르지 않은듯 하다.

컬럼의 내용을 빌리자면, '심성이나 마음이 맑은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을때 나라는 태평
성대가 된다' , 이는 현실이건 조선시대건 변하지 않는 아직까지는 통하는 진리가 아닌가 싶다.


난 사실 공맹사상이나 성리학, 그리고 심지어 천자문도 못 뗀 전형적 현대인이다.
그냥 무언가 사극을 보는 데에 있어 역사적 고증을 정확히 할 수 없다면 최고로 우선이
되어야 하는것이 무었인가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 보며, 어떤 잣대로 사극을 재야 할지
나 나름대로의 기준치를 두고 싶었을 뿐이니  설마 이 글을 보고 흥분 할 사람은 없겠지.


한가지 더 드는 생각은 이산의 출연진이야 말로 대한민국 미남 미녀의 집합소가 아닌가.
한사람의 스타보다 빛나는 한사람의 조연 조차 말이다.

시간을 내어 한번 더 봤으면 좋겠다.  
먼 훗날 더 나이들어, 하나의 성공한 개인으로서.


이산-MBC

의빈성씨역 - 한지민씨



´이산-정조´가 사극 아니고 현대극인 이유
<칼럼>마음이 맑은 이가 군주돼야 나라가 태평성대
2008-06-17 14:00:12  
´대왕세종´도 그런 기미가 다분하지만 ´이산-정조´는 사극이 아니라 현대극이었다. 다만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역사 기록에 나오며 복장이 조선시대 의복과 유사할 뿐이다. 여기에 말법이나 행동거지를 조선 사람들을 흉내낸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그들의 세계관은 현대다. 이들 드라마 속 상하 복종 관계는 현대의 어느 조직이나 산재해 있다. ´이산-정조´와 ´대왕 세종´이 새로운 리더상을 보였다지만, 그것은 오히려 성리학적 인간관에 충실해보인다. 조선시대에 성군으로 기록되는 것은 그만큼 성리학적 세계관에 충실했다는 의미다.

아무리 퓨전 형식이어도 사극은 기본적으로는 변함없다. 하지만 형식을 논외로 해도 내용이나 캐릭터를 보았을 때 요즘 사극이 예전과 달라졌다. 그 대표적인 징후로 개인화를 들 수 있다. 현대인의 실존적인 고민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특히 왕은 더 이상 왕이 아니라 복잡한 현대 사회 속의 실존적 개인이다. 대중역사서뿐만 아니라 소설, 드라마도 왕을 조직속의 고민하는 개인으로 그릴 뿐만 아니라 사랑과 로맨스의 존재로 만든다. 물론 이러한 점은 시청률을 의식한 퓨전사극의 대표적인 포지셔닝 전략이기도 하다.

특히 ‘이산-정조’와 같은 이병훈 표 사극을 비롯한 ‘주몽’, ‘태왕 사신기’, ‘대조영’ 등은 모두 석세스 스토리(성공이야기)를 지향해 성공 시대를 꿈꾸는 한국인들에게 어필할 수 있었다. 석세스 스토리를 지향하지 않았던 ‘쾌도 홍길동’이나 ‘왕과 나’는 상대적으로 침체되었다.

이들 사극이 역사적인 고증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단지 퓨전사극이기 때문은 아니다. 그런 엄중한 방식보다는 재밌는 이야기 거리 만들기에 중점을 둔다. 그야말로 스토리텔링에 충실하다. 이를 위해서 수랏간이나 도화서같은 재밌는 소재거리를 찾아 집어넣거나 캐릭터를 다양하게 하고, 가공의 인물들을 자유자재로 만든다. 한편으로 만화적 흥미를 더하기 위해 악역들을 유효적절하게 배치하면서 시청자의 흥미를 끈다. 이 과정에서 역사 왜곡이나 그에 따른 논란이 있게 된다.

그런데 몇몇 역사적 사실 왜곡 논란은 지엽적이다. 무엇보다 조선을 다루는 사극들이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의 상황을 간과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현대인의 상황을 반영하고 재미를 위한 퓨전 사극을 지향한다고 해도 시대적 맥락 속에서 인물과 사건을 이해하는 근본 틀 거리는 유지해야 한다. 그 틀 거리가 성리학이다. 이틀거리를 무시할 때 사극은 더이상 사극이 아니라 현대극이 된다.

사람은 환경의 소산이다. 한 사회의 사상적 체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산-정조>도 그렇거니와 <대왕 세종> 속 왕과 신하들은 본래 모두 성리학적 인간형들이다. 왕들의 발언과 행동은 성리학적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개혁 군주나 성군을 그리는 드라마들을 이점을 쉽게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공맹사상으로서 유학은 사회를 치세하는 도덕 사상에 불과했다. 개인의 심성과 영성의 도야는 간과되었다. 이것을 불교가 채워주었다. 하지만 불교는 자칫 개인주의적이고 관념적 추상적 일수 있었다. 주희는 사회를 치세하는 도덕사상 유학과 불교를 유학의 입장에서 통합해서 성리학을 만든다.

고려 말에 신진유학자들이 불교를 배척한 것은 황당한 관념성 때문이었다. 즉, 내세를 꿈꾸고 해탈을 치세로 삼으니 현실 정치에 유효한 점이 갈수록 적게 되었다. 현실 경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불교계의 부패는 그나마 사회를 이끌어 갔던 영성경영이 통하지 않게 했다.

성리학자들은 개인의 심성의 도야와 청정성을 유지하면서 천지자연의 도를 인간 세계에 실현시키고, 천지 위의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방법들을 모색한다. 따라서 끊임없이 자신을 도야, 절제하며 청렴한 자세로 백성을 위한 정책 방안들을 궁구했다. 그것이 학문하는 자는 물론 관리와 군주의 책무였다.

따라서 세종이나 정조의 백성을 위한 상업과 시장 중시 정책도 이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현대적 시장주의와는 다른 세계관에 바탕을 둔 것이다. 세종이나 정조가 과학을 강조한 것도 성리학적 이념에 따라 현실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책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궁구하는 것이 하늘의 도를 실현하는 왕이 할 일이다.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른 행동이었다. 이는 실학의 허구성을 주장하는 김용옥과 같은 학자들의 논거가 된다. 어떻게 보면 개혁 군주라는 말도 가공의 말이다. 개혁이 있지 않은 조선 왕조는 별로 없기 때문이다. 조선이 중흥기를 누린 것도 쇠퇴기를 누린 것도 모두 성리학적 시스템 때문이다.

평생 질병에 시달리다 50여세에 사망한 세종 등 조선 임금이 단명한 이유도 성리학적 질서에 따라 자기 욕망을 절제하고 삼갔기 때문이다. 조선이 망한 것은 개인들의 개혁의지가 없고 부패했기 때문이 아니라 시스템의 결함 때문이다. 동인 서인은 물론 노론 소론 남인 북인으로 파당 정치를 벌인 이유도 성리학적 세계관 때문이고, 그것을 반대한 이들의 명분도 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른 것이다.

성군이나 패주의 세계관, 부패 혹은 의로은 신하의 세계관은 성리학에 바탕을 두었다는 데서 같다. 조선 사극에 등장하는 신하들은 아무런 생각이 없는 존재들이다. 명분만 내세우는 위선적 인물들이다. 여기에 부패하고 정치권력만을 차지하려는 몹쓸 인간들이다. 권력쟁투와 부패의 명분이 성군이 바탕을 둔 성리학이라는 사실이 간과된다.

개혁 관리나 군주는 품성이 뛰어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주장하는 존재로 그리지만, 그가 왜 어떠한 사상체계에서 그러한 행태를 보이는지 맥락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왕은 백성을 위한 정치만을 외칠 뿐,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론에 깔려있는 사상 체계에서 대해서는 외면한다. 예컨대 인재 등용, 발명, 시전이나 세금정책, 상업 진흥책이 본질은 아니다. 이런 정책들을 가능하게 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다.

이러한 간과 때문에 사극의 성군과 의로운 관리들이 마치 현대의 민주주의의자인 것으로 보인다. ´이산-정조´에서 같이 정조가 완전이 평등한 세상을 꿈꾸었다는 식의 대사는 실제로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것이 개인적 품성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성리학적 군주는 역시 군주일 수밖에 없었다.

왕은 물론 왕족들 그리고 선비와 관리들의 말과 행동은 사상적 세계관적으로 일정한 맥락이 없고, 산발적이고 우연적이다. 정조나 세종의 경우, 절제와 도야의 경지는 없다. 백성 타령만 한다. 난데 없이 활이나 쏘고 무술이나 연마하는데, 그것도 성리학적 세계관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은 잘 묘사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말과 행동에는 자의적인 태도로 일관한다. 즉 마음 내키는 대로 한다. 정책안도 산발적으로 구성한다. 조선의 올바른 군주와 관리들은 일단 심성의 도야와 절제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공부와 대안의 모색을 통해서 실질적인 정책을 고안하면 만인이 평안한 자연의 도가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이러한 점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정조가 대전에서 정순왕후에게 큰소리를 치고, 노려보는 일을 할 수 있다. 또한 정순왕후를 음모의 주범으로만 몰아가는 정조의 태도는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어긋나는 것이다.

´대왕 세종´도 그렇거니와 자칫 편전이고 궁궐이 격식과 범절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예컨대, 자기 할말을 다하기가 김수현 드라마의 등장 인물들과 같을 수는 없다. 개인의 욕망과 자의식을 직접적으로 표출하는 악다구니같은 발언들의 난무는 성리학적 세계관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아울러 선비들이 공부하는 내용은 도덕 윤리의 내용이거나 과거 시험용 교재에 불과해진다. 백성을 위한다는 정치적 명분과 개인들의 행태는 모순되고 부조리하게 비칠 뿐이다. 요컨대, 지나치게 현대적인 대중심리와 작법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럴 때 사극이 아니라 현대극이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삼는 사극들은 캐릭터의 사고와 행동을 마음대로 남발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당시 인물들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낳는다. 또한 당시 사회 문화적인 맥락은 물론 정치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가능성이 많다. 예컨대 정조와 정약용이 아무리 개혁을 외쳤다고 한들 그들은 성리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점은 단순히 몇몇 사안들에 관한 지엽적인 역사적 사실 왜곡 논란보다도 중요하다. 적어도 조선시대 주류인사들을 그린다면 캐릭터나 인물 설정의 구도, 사고와 말, 행동은 성리학적 세계관에 바탕을 두어야 사극이다. 복색이나 인물 이름, 사건을 에피소드로 열거한다고 사극은 아니다.

무엇보다 조선리더들이 구축하려 했던 것은 심성 경영 혹은 영성 경영이다. 심성이나 마음이 맑은 사람이 리더의 자리에 있을 때 나라는 자연스럽게 태평성대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현대에는 더욱 필요하다.
 
[김헌식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