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ystem Compleat.

8개월

Stories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지난 8개월은 여러모로 중요한 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좋은 직장에서 좋은 직장으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있었고, 일하기 좋은 환경에서 마음껏 일을 할 수 있기도 했단다. 원래 하던 것들을 하지 못하게 되기도 했지만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보고 들을 수 있어 생각의 범위와 시야가 넓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전에 없었던 강도의 쓴맛도 많이 보기는 했지만. 

더러운 블랙베리의 카메라 기능은 화소는 고사하고 노이즈가 어찌나 많은지 자주 들지도 않기는 했지만, 지난 8개월간 함께 다니며 그래도 이런저런 답지 않은 사진은 몇가지가 있어 이 복잡하고도 어메이징했던 8개월을 정리 해 볼까 한다.


사진이 무지하게 많으므로 스크롤 압박 주의.  


이직을 하고 삼성동에 방을 얻은 이후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오늘은 집을 이렇게 저렇게 정리하고나서 밤에 치킨에 막걸리를 사다가 한잔 하려고 계산을 하는데 카드와 함께 딸려나온 사진에 갑자기 우울 해 지기도. 



미안할 뿐인 그녀의 얼굴을 한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막걸리 한병 비우기가 죄송스럽기도. 
모두에게 필요한 시간이 지나고, 정말 인연이라면 또 보게 될 날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억지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으로. 





전 직장의 송별회는 참 버라이어티 했었다. 팀이 와해되는 가장 극단적이었던 모습.  

한남동의 Coffee bar K 는 좋은 분위기였지만 다시 가고 싶지는 않았던 가게. 




다음날 보광동의 아침. 지금 생각 해 보면 보광동에서 빌붙어서 참 많은 밤을 보냈었는데. 






한남 북엇국의 북엇국은 예전에는 참 제대로 였는데 언젠가부터 맛이 전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각종 맛있는 전과 장수막걸리 그리고 북엇국 한 그릇이면 즐거운 밤을 만들 수 있었지. 지금은 양이 줄어서 북엇국 한그릇을 제대로 비울 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하루 쉴 겨를도 없이 바로 떠나게 된 시애틀 출장. 교육과 중요한 회사 행사가 겹쳐서 거의 3주나 되는 출장 일정.  




주말에 출장으로 타는 비행기는 신선한 경험. 일요일에 출발해서 일요일에 도착하는 새로운 경험. 

보잉 777-200 이 그가 태어난 본고향으로 날아갈 준비를.  




도착한 시애틀의 쉐라톤 호텔은 무려 더블 침대가 두개나 놓여져있었다. 혼자자는 방인데 뭐이리 크담 하는 생각은 처음 하루 뿐. 

다소 오래 되어 보이는 집기들이지만 쉐라톤은 언제나 쉐라톤 스러운 느낌. 





한국에서 오후 6시 40분 정도에 출발하는 대한항공을 타고 시애틀에 도착하면, 오전 10시 반 정도 된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호텔에 도착하게 되면 열한시 반 정도. 요기를 간단하게 하고 난 후 먼저 도착해 있던 분들과 함께 시애틀 투어. 시애틀 하면 한국에도 유명한 회사가 세군데 정도 있는데, 하나가 보잉, 마이크로 소프트, 그리고 아마존. 그 중 남의 회사인 마이크로 소프트 캠퍼스로. 마이크로 소프트 하면 푸른색이므로 간만에 컬러를. 


하지만 블랙베리가 색이 구리구먼. 노이즈가 자글자글. 




시애틀에 유명한 관광지역이라면 아마 이 시장통인 것 같은데. 여기서 Clam chowder 를 냠냠. 시애틀 음식은 미국 음식 중에서도 유난히 짠 맛이 강한듯. 





회사 건물에서 바라본 스페이스 니들. 3주 가까이 있으면서 손에 꼽았던 맑은 날.  

매일 빡시게 진행되는 교육과 행사 스케줄에 정신 못차리고 있다가 물마시러 나와서 잠깐. 





그래서 내친김에 점심시간에 아예 나들이를. 호수인지 바다인지 모를 넓은 물가에는 경비행기가 뜨고 내리고 요트들이 정박되어 있는 매우 평온한 분위기로 기억된다. 





스타벅스 1호점은 커피를 파는 가게라기 보다는 기념품 가게로 보는것이 맞을 듯. 난 커피를 사서 마셔보지는 않았지만 사서 마셔본 지인들의 의견에 따르면 그냥 스타벅스 커피 맛이라는 증언. 글로벌하게 동일한 맛을 유지하는 것을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감흥이 없다고 해야하나. 





지역에는 회사의 많은 빌딩들이 있는데, 우리는 여기서 주로 교육을. 

건물마다 부르는 이름이 있던데.  





시애틀의 아침은 날이 흐리던 흐리지 않던 언제나 상쾌하다. 

바쁜 사람들, 차량들. 





더러운 블랙베리 카메라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블랙베리의 메세징과 쿼티는 정말 좋지만 카메라는 정말… 




교육중 매일 아침 나오는 부풰 스타일의 오찬. 

난 빵식을 사랑해. 






사랑하는 에어를 구매했던 베스트바이. 
플라트로닉스 헤드셋도 구했건만, 생각보다 성능이 구려 그건. 




출장을 가면 쇼핑 역시 즐거운 행사중의 하나. 

밸뷰에 있는 커다란 쇼핑몰.  

보스 매장에서 구매하였으나 한국에서 아직 리사이징 하지 않음… 



귀국하기 전 마지막 주에는 보잉 투어를. 
단일 건물로는 디즈니랜드 보다 크다는 비행기 제작 공장은 정말 무식하게 크더라. 

건물 하나에 747, 777, 787 조립 공장이 모두 한꺼번에. 





귀국길의 아침 시애틀 국제 공항은 한산 한산. 



언젠가부터 비행기를 타는것이 그다지 즐거운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비행기는 역시 조종석이지. 
아는게 많을 수록 이런건 절대 즐거운 일이 아니되는 듯. 


미주 노선은 정말 드럽게 비행기에 오래 앉아있어야 함. 



출장 전에 충분한 시간이 없어 방을 얻지 못하고 떠났는데, 귀국 하자마자 트렁크를 끌고 바로 계약에 나선 집. 
떠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제는 고민중이긴 하지만, 이 집에서 정말 많은 일이 있었더랬다. 

좋은 일이었을까 나쁜 일이었을까. 



침실과 거실  




혼자 자기엔 중국 대륙만큼 넓은 침실. 하지만 침대에서 자지는 않아. 





직물 소파가 좀 구리긴 하지만 뭐 옵션인데다가 최근엔 주로 침대로 쓰고 있으므로 무효. 





나는 제대로 한번 써본적도 없는 주방. 
식탁은 짜장면이 올때만. 

그나마도 지금은 옷걸이로 사용 중이라는. 






그렇게 일은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고. 
저 명함은 벌써 몇백장이 바닥이 나 버려서 새로 1천장을 받고. 지금은 칠백장 정도 남은듯. 





언제 떠날 지 모르므로 살림은 최소한으로 유지 하고 있었는데. 
주말엔 언제나 청소하고 메일 회신하고 문서 작성하고 비행기를 지르는 즐거운 삶이었는데. 




이렇게 수지도 보고 





요렇게 납득씨도 보고  




빨래도 하면서 즐겁게 즐겁게 지냈는데. 




이 날 이후 모든게 변해 버렸다. 

좋은 시간은 잠시 뿐. 괴로운 시간이 더 많았고,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술을 입에 달고 지내는 시기가 시작. 





사랑하는 나의 다이슨 청소기.  

빡센 청소 뒤에 통째로 물빨래 해주는 센스. 




일은 즐겁게 즐겁게. 

참여도도 높고 인기도 많은 행사라 즐겁게 즐겁게.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어딘지 몰라 헤메고 헤메이긴 했었지만 그래도 사람과의 관계도 열심히 해 보려고 노력 또 노력.  

하지만 그것은 망테크  




올때처럼 떠나가는 짐들이 아쉽고 미안한 마음에 






또 다시 밤을 지새우기를 수 차례. 






술은 이제 맛있는 곳에서 적당히 먹는 것으로. 

몇달간의 긴긴 방황을 끝내고, 다시 전처럼 즐겁고 재미있게 살기 위해  





짙은 아쉬움과 미안한 마음은 젊은 날의 추억의 향기로 남기고. 





바리바리 짐을 싸고 나니 





남은 것은 지독히 더웠던 여름 끝의 가을 햇살에 비치는 적막함과 




잔뜩 남아있는, 

나의 삶에는 필요 없었던 물건들, 그리고 사람이 살았던 흔적들. 



이렇게 밝은 햇살 속에, 지금 이 집에서 누군가와 함께 깨어나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는 살았었지만 
역시 그것은 나의 과도한 욕심이고 망상이었으며 
쉽지 않았던 관계들로 인해 술을 입에 달고 살기에 적절한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은 

서른 다섯을 목전에 두고 꼭 반성해야 할 일이다. 

지난 시간은 언제나 사진으로 남지만 
이 인생 최대의 구린 품질의 사진을 뱉어내는 블랙베리가 남겨둔 노이즈 심각한 퀄리티의 사진이 
지난 8개월, 인생 최대의 역경을 헤집고 나와 마무리 하려는 더러운 퀄리티와 다름 아니다. 


희망은 언제나 좋은 것이나 
준비가 되어 있을때 누릴 수 있는 것. 

일을 더 하면서 즐거운 취미 속에 건강한 삶을 다시 찾아 보련다. 
안녕, 일을 빼면 나머지는 다 초딩 같았던 8개월.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