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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Fantasy Novel

푸른 소금 - 마치 한편의 순정영화

Stories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전보다 나아진건지 어쩐건지 이제 일년에 극장에 두번은 간다. 나이를 먹는건지 이제 20대에 줄기차게 즐겨보았던 영화들 중 재미난 영화도 기억에 가물 가물 하고, 하는 일과 특별히 관계된 것이 아니면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것이 누군가가 머리에서 지워버렸나 싶은 생각도 가끔 든다.

그런 와중에, 어쩌면 모호해서 석연치 않을지도 모를, 아름다운 영상미를 가진 영화를 심야로 한편 보게 되었다. 그나마 휴가를 휴가처럼 보낼 수 있게 해 준 영화, '푸른 소금'. 

이것은 마치 파이날 판타지

Image from: http://www.nemopan.com/files/attach/images/1116443/698/966/004/%ED%91%B8%EB%A5%B8%EC%86%8C%EA%B8%88_001.jpg

푸른 소금, 정말 제목 잘 지은 것 같다. 의미를 풀이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내가 만화를 매우 즐겨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순정물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문득 든다. 사는데 꼭 필요한 소금과 맑음을 상징하는 푸름, 어줍잖은 생각에는 맑은 사랑, 뭐 그정도가 아닐까 싶은 생각. 그래서 새로운 장르, '순정 영화' ㅋㅋ

일견 '아저씨'의 주인공들이 나이를 먹으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데, 단순히 그렇게 비교하기엔 신세경님의 홀려버릴 듯한 깔끔한 미모와 원빈만큼은 잘 생기진 않았지만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한마디가 더 가슴에 와 닿는 나이스 중년 송강호님의 조합은 순정물의 표지에서 풍기는 느낌과 얼추 비슷하다고 할까..

나이스 중년

Image from: http://extmovie.com/zbxe/files/attach/images/126849/183/210/002/s2.jpg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모든 것을 감싸 안으려면 당최 어떤 난관을 겪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남자라면 찐한 북어국 한 그릇에 총까지 맞아 주어야 할 대인배의 기질을 가져야 하는 것일까. 영화의 다른 모든 것들 보다, 돌멩이를 보석으로 만드는 그 대인배스러운 무언가가, 예전에 은석이가 말했던 '아무 생각없이 과연 찔레꽃을 사랑할 수 있을까' 의 멘트가 현신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 그냥 니가 더 잘 살았으면 좋겠어' 라는 상투적인 멘트는 송강호님이 뱉었기에, 20대의 배우가 아니기에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치기어린 연인의 감정이라기 보다는, 마치 아버지가 딸에게 바라는 마음과 같은 느낌. 그래서 아무런 댓가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돌멩이 같았던 그녀를 보석으로 만들 수 있었던게 아닐까. 대인배의 호연 지기를 기르기 위해 극 초반에 그렇게 바다를 주구장창 보셨는지도 모를일이다.

사채를 빌려쓴 친구를 위해 폭력배의 협박에 굴하지도 않고, 팔아버린다는 멘트에 당당하게 맞서고, 초반부의 약간 여성간의 동성애스러운 묘사들이 무언가 신세경님이 분했던 역할의 청순함을 강조하려 했던 장치들이라 해도, 그녀는 스크린에 비추어지는 그녀만으로 이미 나쁜 의심이 들 가능성 자체를 없애버린다. 가죽 점퍼에 바이크는 무얼 상징하는지 모르겠지만, 고등학생 관람가인 이 영화에서 헬멧을 쓰지 않고 멋들어진 대배기량 네이키드 바이크를 타는 모습은 일견 청소년에게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겠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미 청초하다. 그 청초함 때문에, 헬멧 없이 오토바이를 타는 장면이 미칠수 있는 영향은 이미 90년대 영화 '비트'의 정우성님이 다 배포해 버렸기 때문에 보는것 만으로도 아침이슬 같은 그녀를 욕할 수는 없다 라고 말하고 싶다. 그 만큼 그녀는 이 한편의 만화같은 이야기에 자연스레 녹아들며, 수많은 남성 관객을 집중하게 만든다.


느와르와는 다른 남자의 매력이 물씬 풍기는, 90년대 유행했던 '남자의 향기' 소설의 주인공과 같은 포용력. 자신이 무엇인가, 어느정도에 있는가를 아주 잘 아는 그런 남자의 이야기.

좀 아쉬웠던건 주인공을 제외한 각 인물들의 매력이 충분하게 발산되지는 않은 것 같다 라는 느낌. 이경영님은 김영철님과는 비슷한 듯 다르게 어두운 보스의 느낌을 풍기지만, 줄거리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필요 충분 조건 이상의 느낌은 별로 없다. 김민준님이 분했던 역할 역시 신세경님이 총 다루는 모습을 보고 동업자간의 경외심인지 짝사랑인지 모를 이상한 감정을 품은 간지나는 킬러 이상은 아니지 않았나. 윤여정님 역시 결정적인 순간에는 물렁했던. 이야기를 구성하는데 있어 인물의 관계가 주인공들의 삶에 분명 영향을 끼침에도 불구하고 임팩트 있게 와 닿지 않았던 것은, 송강호님의 보드라운 남자 냄새와 마치 화보와 같았던 신세경님의 미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다.

이분은_판타지에서_오셨나_JPG




많은 작품에서 색깔있는 역할로 등장하셨던 오달수님. 특히 '달콤한 인생' 에서의 총기 매매상 역할이 이 푸른 소금에서도 오버랩 된다.  푸른 소금에서 몇 안되는 신세경님의 미소 중 가장 밝은 모습인 것 같다. 또한, '우아한 세계'에서 송강호님과 순대국집에서 결투아닌 결투를 하는 장면은 큰 즐거움이었달까. 기억날 만한 영화에서는 항상 암흑가에서 일하지만 유쾌한 느낌을 선사하는 역할을 자연스레 소화하시는 희한한 분.


이번 작품에서도 '하녀'의 역할로 분하셨던 윤여정님. 청부살인업체의 사장님. 권력의 주구로서 탐하는 달콤한 와인을 사랑하는 역할은 하녀에서의 이미지와 다르지 않았다랄까. 실패한 직원을 용서하지 않는 성격은 후반부에 와인때문인가 많이 누그러진다. 아마 신세경님이 분했던 조세빈이 너무 예쁘고 깜찍해서 쏠 수가 없었으리라... 아;; 그만..

김뢰하님_1



김뢰하님_2



'살인의 추억' 에서 형사의 역할을 했을때 '아, 이분도 장난아니다' 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었다. 영화속의 모습을 보면 실생활에서도 무서운 분일 것 같다 는 생각이 들 정도. 역시 '달콤한 인생'에서 비열한 건달로 분하셨을 때도 인상깊었다. 개인적으로 '달콤한 인생' 정말 사랑하는데, 김뢰하님께서 분했던 양아치 역할이 정말 강하게 와 닿지 않았다면 영화 마지막 이병헌님의 무대뽀 총질을 절대 이해 할 수 없었을게다. 이 영화에서는 실마리를 하나 던지고 단명하신다는. 심지어 어떻게 단명하는지 조차 화면이 없어서, 영화의 대사에 집중하지 않으면 어떻게 극에서 사라져 가는지 절대로 알 수 없을 것이다.

완전미남_천정명님


충직한 수하의 역할, 그리고 송강호님과 함께 극에서 눈빛 개그를 선보였던 천정명님. '애꾸'라는 역할은 얼굴의 흐릿한 흉터 분장을 찾아내기 전 까지는 왜 애꾸인지 잘 몰랐다. 언젠가 멋진 느와르 영화의 주연을 맡아도 잘 어울리겠다 라는 생각. 많은 사람들이 그닥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엔딩이 나에게는 좋았기 때문에, 그 엔딩 속에서의 이 남자의 모습 역시 썩 마음에 들었다.

이종혁님


'주유소 습격사건' 에서 처음 보았을때, 정말 잘 생긴 분이다 라고 생각했다. '비열한 거리'에서도 역시 같은 느낌이었고. 한번에 확 대스타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것을 항상 이상하다 생각 했었지만, 점점 격상되는 것 같아서 좋은 배우. 나중에 더 나이를 드시면 천호진님이나 김영철님과 같은 암흑가의 보스 또는 어딘가의 우두머리가 잘 어울릴 거 같다는 느낌.





개인적으로 한국영화 참 좋아한다. 그렇다고 90년대 이전의 작품들에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90년대 말, 그리고 2000년대에 개봉했던 많은 영화들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많다.
'사생 결단', '살인의 추억', '달콤한 인생', '초록 물고기', '우아한 세계', '잘 알지도 못하면서', '황해', '이웃집 남자' 등등등등의 많은 한국 영화들. 이 영화들에는 눈에 띄는 매력적인 캐릭터들, 그리고 그 캐릭터에 분했던 수많은 배우분들이 계시다. 특히 '이웃집 남자'의 윤제문님의 경우, 우아한 세계와 비열한 거리 양쪽에서 은갈치 양복이 매우 어울리는 인상 깊었던 분이었다. 개인적으로 송강호님, 윤제문님, 김윤석님은 서로 색이 다르면서도 어딘가 비슷한 향기를 풍기는 구석이 있지 않나 싶다.  이웃집 남자에 대한 감상은 여기.

아무튼 실력을 가진 분들이 좋은 연기를 통해 아름다운 영상 속에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한국 영화만 DVD로 구매해서 벽 한켠에 쌓아 두고 틈틈히 돌체 구스토가 만들어내는 커피와 함께 프로젝터를 통해 즐기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그런 재미난 한국 영화의 연장선 상에서, '추격자'나 기타 많은 영화에서 보여졌던 인물간 대립구도가 아닌, 남녀 주인공의 순정만화 같은 새로운 색깔의 발견은 영화의 제목 만큼이나 신비하고 새롭다. 다른 모든 것들, 이를 테면 첫장면에 영화의 엔딩을 예상 할 수 있는 부분들을 차처하고서라도, '푸른 소금'은 무언가 새로운 색깔의 영화였다는 점에서, 난 2시간여에 달하는 러닝 타임이 매우 즐거웠다.

앞서 이야기 했던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별로인 영화가 될 수도 있겠다. 캐릭터 간의 관계와 캐릭터의 성향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는 느낌 보다는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캐릭터가 존재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어보인다. 그래서, 대부분의 인물들이 이야기 구성의 소임을 마치면 죽거나,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보통의 관객으로서, 영화의 스토리가 '추격자'처럼 정점에서 환상적으로 폭발 하지는 않고, 그만큼 치밀 하지 않다고도 생각 한다.  하지만 어떤가.  블리자드 같은 바람이 있으면 춘삼월의 봄바람도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극중의 대사 처럼, 빨강색 검정색 64비트의 RGB 로 조합될 그 많은 색깔이 있는 것처럼, 영화는 내게 그저 또 하나의 새로운 색으로 잔잔할 뿐이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이남자... 다만, 이전의 영화들과는 그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언제나 그렇지만, 밥먹는 연기는 정말 세계 최강이 아닐까 싶다. 아직도 '살인의 추억'에서의 변희봉님과 밥먹으며 대화하는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잔잔함의 한가운데에 송강호가 있었다, 그래서 달랐다 라고 생각한다. 중년의 남자란 저런 배포와 포용력, 그리고 열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닐텐가. 그런 것들이 '아저씨'에서의 원빈 처럼 아, 저런 남자는 현실세계에 없어 같은 느낌을 주지는 않는다. 웬지 어딘가에 은퇴한 잘나가던 중소기업 사장님으로 존재 할 것 같은, 잘 찾아보면 저런 남자도 있을 것 같은, 그런 사실적인 인물의 느낌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송강호님이 아니련가.

또한, 그러한 마음을 품어주는 중년에게 응당 관심과 애정을 품는 것 - 그것이 비록 20대의 지옥불과 같은 것은 아닐지라도 - 역시 인지상정 아닌가. 신세경님의 캐스팅은 실로 절묘했다고 생각한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소녀 같은 느낌, 감수성, 10대의 오토바이, 힘들기에 같이 힘들게 사는 친구를 위해 모든 것을 쏟기도 하는, 그런 천진난만 하지만 가볍지는 않은 그녀. 좋게 보아야 15살 정도 차이나는 아저씨에게 초면에 반말을 뱉어도 밉지 않을 수 있는 여배우가 어디 또 있을까. '집에 바로 가', 웬지 나도 심야를 보다가 그녀의 말을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면... 아.. 그만..;;


푸른 소금



사진과 영상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스토리 말고도 얻을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신세경님의 팬이라면 화보같은 각 장면을 놓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송강호님과 화려한 조연에 부푼 기대를 품고 스크린을 마주하게 된다면, 실망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내가 왜 한편의 영화를 보고 저렇게도 많은 영화를 떠올렸는가 가만히 생각 해 보니, 각 장면 장면들이 다른 한국 영화에서의 캐릭터를 차용해서 쓴 것들이 많지 않은가 싶다. 달콤한 인생의 김영철은 이경영, 하녀의 윤여정, 달콤한 인생의 오달수, 역시 달콤한 인생의 김뢰하, 또 달콤한 인생의 진구가 애꾸로, 그리고 어디선가 본 듯한 다른 많은 인물들. 그렇다고 단순히 기존의 영화들을 엮어 만들었다고 하기엔, 조세빈의 등장이 새롭고, 송강호의 연기가 전과 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이전에는 어떤 직업에서든 치열하게 살아가는 중년의 모습이었다면, 이번에는 인생 달관한 듯한 중년의 인상. 멜로같은 느와르, 느와르스러운 멜로, 눈 앞에 총구를 들이 대어도 '네가 쏴서 편해 질 수 있으면 쏘아라' 는, 그래서 순정영화.

난 극장에 가는것이 연중 행사이기 때문에, 영화를 본다는 사실 만으로도 즐거웠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재미있는 영화였다. 역시 영화는, 사전 정보가 없으면 없을 수록 실망보다는 만족이 큰 듯.


엔딩이 참 싫다는 분들이 많은데, 난 뭐 좋다. 오히려 우아한 세계, 이웃집 남자와 같이 마치 내 모습 같은 중년이 비극적 삶으로 허물어 지는 것 보다, 색다른 멜로에 집중한 느낌이 짙기 때문에 가볍고도 유쾌한 엔딩이 마음에 든다.

달콤한 인생, 김영철님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

달콤한 인생, 김뢰하님


포풍 나뿡놈 간지



사족을 더하자면 이 영화에서의 신세경님은 마치 파이널 판타지8의 리오나, 파이널 판타지 10의 유우나 같은 느낌이었다. 연예인에게 반하는건 언젠가 SKT 광고에서의 장농 속 이민정님 이후로 두번째인듯. '시트콤을 보지는 않았지만 영화에서의 단편적이고도 개인적인 신세경님에 대한 감상은, 

'신적인 아름다움'.




각 배우님들의 이미지는 다음의 링크에서 가져왔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twk84&logNo=10115415965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영화에 대한 감상은 여기.
http://pennyway.net/1744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직업

Stories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국내에서 일을 하다 보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국내에서 컨설팅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견들이 각각 있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기술 컨설팅이기 때문에 내 입으로 뱉은 말은 적어도 구현이 되어 돌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뱉어 놓고 동작 안하면 그건 곧 신뢰의 상실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첫 대면에 해법을 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뭐 도둑놈들 이라는 시각을 내가 그게 아닙니다 할 수는 없을 것 같기도 하다.

Consulting

Image source: http://www.hayderisk.com/userimages/svc_consulting.jpg

실리콘 밸리의 벤처와 일을 본격적으로 한지 대략 1년여가 흘러가고, 그 사이에 많은 벤처 및 그들의 솔루션에 대한 소개 자료들을 받아서 검토해 보면서 느낀건, 참 일하는 방법들 많이 다르구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실리콘 밸리의 벤처 및 그들 업체의 기술자라고 해도 각양각색 천차만별이어서, 누구는 정말 대단하기도 하고, 어떤이는 또 그 반대의 경우도 많다. 사실,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거나, 아니면 일반적으로 보편적인 수준의 기술자들이 참 많은데 이들이 우리나라 기업과 일을 하게 되면 필요 이상의 신뢰를 확보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이게 참 어떻게 보면 신비스러운 부분인데, 나름 찬찬히 생각해 보니 이건 일반적으로 국내 기업과 해외 기업이 함께 일하게 되는 경우 한국 회사간의 갑-을 관계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컨설팅이라는건 기본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조직에 적재적소의 도움을 제공하기 위해 행하는 일련의 작업임은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생각 해 보면, "작업의 의뢰" 란 결국 "도움의 요청"이며, 이 도움에 "댓가"를 지불하기 때문에 실제 업무 관계에 있어서는 오히려 영향력이 외부업체에 더 많이 실리게 되는, 한국 회사간의 관계에서는 참으로 찾아 보기 힘든 사태들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도움을 주는 주체가 외국인을 주축으로 구성되었다면, 도움에 대한 대가는 수직 상승 하게 된다.

이는 역으로 이야기 해 본다면, 같은 한국 회사들 간의 협력에 보통 상하관계가 형성 되는 것이 올바른가 하는 이야기도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현장에서 직접 뛰고 있는 분들 중에는, 실제 개인적인 인간관계에 있어서 별 문제없는, 아니 오히려 친근해 보이기까지 할 수 있는 사람이 외국인을 주력으로 구성된 컨설팅 팀에 대하는 태도와, 필요한 물품을 납품하는 국내 업체의 인력들을 대하는 태도가 극히 상반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를 많이 목격해 왔다.

왜 그럴까? 

좀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전 샌디에고의 퀄컴 본사에 입사한 커널 엔지니어이자 친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해외와 국내, 더 정확하게는 미국과 한국의 기업들이 사람을 채용하는데 필요한 요구조건을 확인하는데 굉장히 다른 방법을 사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종의 스펙 공화국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따라서 국내 1위의 대기업이라고 해도 인터뷰는 보통 이력서를 중심으로 구술하는 형태로 진행 된다. "어디서 뭐했구요, 뭘 배웠구요, 토익은 몇점이고 자격증은 뭐를 가지고 있어요" 로 대변되는 인터뷰의 형태. 하지만, 1차 전화 인터뷰, 2차 현장 인터뷰의 형태로 진행되는 미국 회사들의 면접의 경우, 이력서는 1차에서 이사람이 무엇을 했었는지에 대해서만 확인하고, 2차에서는 실무적인 내용에 필요한 질문을 해당 업체의 엔지니어들과의 만남을 통해 이 사람이 정말 그 내용을 알고 있는지를 확인 한다. 따라서 인터뷰의 내용은 대략 "MMU를 소프트웨어로 어떻게 구현할 수 있을까요", "barrier()와 wmb()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 해 보세요" 와 같이 굉장히 실무적으로 디테일한 질문들을 장장 7시간에 걸쳐서 받게 된다. 그리고 대답도 보통 5초 이내에 시작하지 못하면 "알겠습니다" 되는 분위기 속에서. 그 녀석은 원체 대단한 녀석이라 그 수많은 질문 가운데 대답하지 못했던 것은 단 하나 였으며, 따라서 미국에 비자도 없고, 국내에서 내노라 하는 대학을 졸업한 것도 아닌데, 오퍼는 미국 현지의 아이비 리그 박사 수년차의 대우를 받고, 하고 싶은일 하게 되었다는 해피해피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난, 여기에 많은 답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녀석은 틈만 나면 재미로 커널 코드를 보는 녀석이고, 어셈블러따위는 국딩때 즐겨 사용 했던 놈이었던 거다. MIT에서 특수한 목적으로 만든 드라이버에 버그가 있으면 고치고, 커널에 버그가 있으면 고치고, 재미있어 보이는 각 대학 및 오픈 프로젝트에 코드를 반영하는, 그래 그녀석은 분명히 난 놈이었다.

근데 그런 난놈이 국내에서는 그닥... 으로 치환되었었다. 하긴 그녀석 국내 있을때도 그닥.. 레벨은 아니었긴 하지만. ㅋ 이제는 그닥... 으로 대접 받지는 않겠지.


다시 돌아와서, 결국은 이러한 여러가지 사회 문화적 인프라의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해외 근로자와 국내 근로자의 차이, 조직에서 사람을 채용하는데 필요한 것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관점의 차이가 프로젝트를 하는데 있어 이게 되냐 마냐를 결정하는 주요한 차이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높은 비용을 지불 하게 될 수밖에 없게 되며, 갑이 갑이지만 을로서 오버라이드 되는 현상도 나타나는 것이다.
 
하고 싶은걸 계속 하고 또 그래서 여가의 시간마저 좋아하는 것에 투자할 수 있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보다 많은 성취를 이룰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게 다만 해외에서 더 많이 인정을 받게 될 가능성이 다분하기는 하며, 국내에서는 스펙에 좌절하고, 대기업 문턱을 밟지 못해 눈물을 좍좍 흘리게 될 지도 모른다. 무엇을 어떻게 선택하고 해야 할런지는 본인의 판단의 몫이지만, 결국 일에 필요한 사람은 저런 녀석이 되는게 아닐까.

너무 일반화 하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게 전반적인 감상인 것도 맞는듯 하다.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은, 해외의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거기서 좋은 직장을 얻거나, 한국에 돌아와 거부 할 수 없는 스펙으로 승리를 쟁취하면 되지 않겠나. 굳이 한국에 돌아와야 할 필요가 있겠냐마는. 그럼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그렇게 할 수 없고, 심지어 국내의 좋은 학교도 힘들었다면, 어떨까.

두서 없는 글의 나만의 결론은, 하고 싶은게 있어서 그걸 직업으로 선택하려면 엄청나게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거 같다. 좀 못하더라도 억지로 하는 사람보다야 낫지 않겠는가.


아... 참 사는게 쉬운게 아니에요.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제 1권력, 히로세 다카시

Stories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어느덧 날이 밝아온다. 한동안 자동화 코드의 개발과 클라우드의 구조 설계등의 리뷰에 온 정신을 쏟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울러 번역중인 책의 밀린 진도를 빼느라 그 어느때보다 바쁘게 살지 않았는가 싶다.



어디의 웹 페이지에서인가, "공포스럽다" 라는 이 책을 읽은 분의 덧글을 보고 나서 책의 제목이 주는 묘한 마력에 이끌려 이런 저런 리뷰를 찾아 보다가, 결국 구매를 했다. 번역서 라는 부분도 비록 분야는 다르지만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던 부분도 있기도 했지만, 나와는 전혀 관계 없을 것 같은, 그리고 이전에 크게 관심도 별로 없었던 '자본'과 '권력' 이라는 주제가 다른 서적들과는 다르게 분명 어떤 매력이 있었던 것 같다.

책의 내용 및 성향에 대한 간략한 리뷰나 후기들은 간단한 검색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오히려 책을 읽는 중간중간, 또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들은, 비록 이 책이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가정을 세우더라도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의문들이었다.  대충 몇 가지만 말해 보자면,

- 우리나라에 미군은 언제까지 주둔할 것이며, 그들은 어떤 목적으로 한국에 있는가.
- 국내의 자본들은 과연 그들보다 더 거대한 자본에 의해 침식당하거나 지배관계에 있지는 않는가.
- 리먼브라더스의 몰락과 이로 인한 세계경제의 곤란은 과연 예기치 못한 것이었는가.
- 미국 채권 및 달러, 그리고 금, 석유, 광물과 같은 가치 불변의 자원은 어떤 관계가 있는가.
- 내 개인의 삶은 위의 질문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대처 한다고 해서 그 결과의 변화가 있는가.

뭐, 이 정도 인 것 같다. 이보다 많은 것들이 있긴 하지만, 웬지 영화 '아일랜드'의 장면이 생각나서 더 쓰는건 오바스럽지 싶다. 이들은 정치적 사상과도 관계가 없으며, 다만 나와는 크게 관계 없어 보이는 돈의 흐름이 내 처지를 결정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질문의 연장선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음모론에 너무 빠진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기실 미국까지 가지 않아도 비슷한 행태는 많은 곳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에, 이 책이 주는 공포가 나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처지가 되지도 못하는 것 같다. 

저자는 굉장한 사람이다.  책의 처음과 끝을 동일한 어조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를 수많은 인명과 기업의 고유명사로 부터 이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작업은 분명 개인이 달성하기에는 쉽지 않은 것이며, 이러한 세세한 분석작업을 통해 저자가 확보한 자료는 분명 책에는 넣을 수 없었던 내용들이 더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한다. 


누구나 읽어서 재미지는 책은 아닌 것 같다. 다만, 흥미를 가지고 완독하게 되면 이 책의 진실성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의 여부를 떠나서, 돈의 흐름에 따른 간결한 인과 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시각을 만들어 낼 수 있지 않을까. 

책의 일부 내용은 깊이 탐구하거나 그 내용을 포스팅하게되면 공격받기 십상이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게다가 나는 일본 그 자체에 대한 반감은 크지 않지만, "월가의 비지니스를 이해하지 못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 의한 진주만 공격" 에 대한 저자의 발언 외에 일본의 전사 및 일본 내부 자본에 대한 소개가 없는 점에 대해서는 현재 일본이 가진 경제대국의 호칭에 비추어 볼때 전혀 관계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듯 하다.  

그런 말이 생각난다. "진실은 무겁다."  

좋은 번역서인듯. 

저자의 다른 책 중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한가지 신기한 것은, 저자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소개는 일어와 한국어로만 존재하는 듯 하며, 영문 버전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체르노빌의 아이들]
[원전을 멈춰라]
[왜 인간은 전쟁을 하는가]
[미국의 경제 지배자들]

저자의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한 코멘트 
http://www.sheffnersweb.net/blogs/accuratemaps/announcement/fukushima-nuclear-crisis-worse-than-you-think/


공돌이의 간만의 독서라 즐거웠던 것일까.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조직과 업무, 그리고 제품

Stories
(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

오랜만에 전에 다니던 회사의 임원분과, 부사수로 뽑아 놓고 미처 데려오지는 못했던 후임, 그리고 대한민국에서 먹어주는 프론트엔드 개발자를 만나고 왔다. 오랜만의 송파 나들이는 참 일하면서 왜 그렇게 올림픽 공원에 자주 가서 머리를 식히지 못했었나 하는 아쉬움이 새록새록 떠오르는 하루였달까.

가끔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인것 같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무엇에 그리 미쳤는지 내가 해결 할 수 있거나, 내가 무언가 이룰 수 있는 것들에 대한 갈망이 날이 갈 수록 커지기만 한다. 그로인한 수혜는 지난 수년간 한해한해 무언가 얻지 못했던 한해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시스템의 Implementation 이란, 한번 구축하게 되면 자주 손댈일이 없는 마치 저수지와 같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회를 통해 새로운 시스템들, 새로운 서비스들에 몸담아 그 구조를 생각하고 그 구현을 이루어 냈다. 심플렉스 인터넷을 다니던 시절부터, 기술이사님과 나누었던 수많은 이야기들, 그리고 실제 서비스에 반영할 수많은 오픈 소스들에 대한 사전 연구, 서비스 도입 여부의 타진, 관계 부서장들과의 흡연실 생활 등등등 2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했던 일이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일들을 정말 즐겁게, 또 다이나믹하게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대화 하며 정보를 나누는, 어떻게 보면 현재 내가 어떻게 시스템을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수많은 엔트리 포인트를 남겨주었던 회사였다. 아니, 회사도 회사지만 난 아직도 그 기술이사님을 사수로 생각한다.  뭐, 살다보니 서운하게 해 드린 경우도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개념없이 남의 문제 생긴 시스템을 분석해 주겠다고 솔로 컨설턴트로 활동한 적도 많았다. 나름 5개 이상의 업체와 그들의 시스템적인 문제들, 이를테면 리눅스 솔루션의 솔라리스 포팅이라던가, HPC 클러스터의 구성, 턱시도와 오라클 관련 이슈들, 웹로직을 필두로 한 각종 WAS의 JSP 메모리 leak 추적 등. 매번 매달렸고, 매번 성공했었다. 사실 성공하지 못하면 보수 자체가 없는 것과 더불어, 계약으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심리적 마지노선의 역할이 중대 했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기본적인 요소는 호기심이 아니었을까. 어려울 것 같은 문제는 오히려 쉽게 눈에 띄었고, 쉬울것 같은 문제는 언제나 바로 옆에 있는 답을 알아내기위해 숱한 밤을 지새워야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미쳤던게 아닐까.

그 다음 회사도 심각한 시스템/네트워크/스토리지 전반에 문제를 안고 있었고, 그 문제를 해결 하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입사해서 2년을 다녔다. 일본이 주 고객이었던 탓에 총체적인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한달에 한번의 작업 공지만 허용 되었고, 따라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데 총 3개월이 걸렸다. L4 이중화 설정, MSSQL SAN 클러스터, IP Aliasing 을 사용한 다수의 닷넷 서버들. 데이터 센터의 찬바람을 도와주는이 없이 혼자 3개월을 맞고나니, 무릎에 건염이라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걸을수도 없는 통증에 모든 작업 이후에는 일주일을 앓아 누워있기도.

그 회사를 수많았던 이유로 인해 정리하고, KT 클라우드에 뛰어든지 다음달이면 이제 만 1년이다. 컴퓨트 클라우드의 구성, 그리고 자동화, DevOps 로서의 역할, 최초 구성단계의 수많았던 시행 착오들을 거치면서 컴퓨트 클라우드 프로젝트는 마무리로 달려가고, 스토리지 클라우드에 몸담아 해외 벤처와의 일종의 가교 역할을 하다 보니, 이게 또 사람이라고 그 짧은 1년에 얻은 수확이 적지않다. 이 회사의 프로젝트가 끝나면 다음 프로젝트들이 줄 서 있고, 이제는 진정한 기술 컨설턴트로서 한발짝 한발짝 다가가고 있는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

그런 시간들을 보내고 나서 만난 오늘의 지인들은, 각자의 고민을 내가 함께 지내왔던 시간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채 가지고들 있었다. 조직 내에서의 인간관계, 기술 신뢰도가 떨어지는 협업 구성원들에 대한 불만, 팀의 무관심으로 인한 핵심 업무의 관계 없는 다른 팀으로의 이전 등등. 이 분들의 고민을 듣던 와중에 문득 느꼈던 것은, 지난 1년의 경험으로 다시 한번 그런 상태들을 해결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 라는 것이었다. 물론, 냉정하게 이야기 해서 컨설턴트로의 방문이 아닌 이상, 즉 각 조직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레벨로의 투입은 의미가 없다. 그리고 대기업과 동일하게 발생하는 중소기업의 인력으로 인한 문제는 대기업보다 더 풀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인력 관리가 쉬웠어요 라고 말할 수 있는 조직은 강남의 화류계에도 없으리라.

해답없는 고민들 속에서 스스로의 미래들을 생각하는 모습은 지인들의 보다 좋은 미래에 대한 즐거운 상상으로 이어지게 한다. 어느회사건 내 등 쳐먹었던 회사가 아닌 이상 불편한 관계로 정리 했던 적이 없으며, 그 조직들에 있었던 좋은 사람들은 언제 만나도 즐겁다. 다만, 일견 불합리해 보이는 구성이라도 관리의 입장에서 조율 해야 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닐것이며, 그 사람들 사이에 연계 되어 있는 여러가지 관계의 매듭이 꼬인데 더 꼬여있는 모습은 진정 유쾌한 광경은 아니리라.


문득, 그런 결론을 내려본다. 서비스를 제대로 만들고 싶고, 좋은 아이템을 추구하고, 잘 팔아먹을 궁리를 하는 이 모든 활동을 통해서 전체의 이익을 상승시키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들은, 눈 앞의 패스워드 권한따위와 같은, 같지도 않은 이권에는 관심도 없다. 그것은 이권이 아니라 도구일 뿐일텐데, 이를 권력으로 승화시키려는 움직임은 또한 어느 조직에나 있기에 서글프기도 하다. 큰 기업에는 그들의 룰이 있고, 작은 기업에는 큰 기업이 가지지 못한 무엇이 필요하지 않겠나. 밥그릇이 소중하면 지키려고 하지말고, 농사를 더 잘 짓는 방법을 생각해는 그런 힘 말이다.

서로 다른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그런 프로젝트 그룹의 힘, 또 그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아래서, 일을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는지 배워가는 후임들을 양성하는, 그런 힘들.
친하다고 전문가 제쳐두고 지 후임한테 일줘서 프로젝트 말아먹는 그따위짓 말고 말이다.


많은 생각이 드는 밤이다. 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

Fantasy Novel

Stories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




이런 저런 책을 굳이 가려서 읽는 편은 아니지만, 언젠가부터 판타지 소설을 읽으면 무언가 덕후의 느낌이 나는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다 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 타인에게 권하기도 좀 그렇고, 내가 느꼈던 감상이 그들에게도 그대로 전달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었기에 아주 친한 지인이 아니라면 굳이 읽어봐라 한마디 던지지 않았던것도 사실이다.

글이 전달하는 이성과 감성, 그리고 인간이 인간에 대해 품 어야 하는 올바른 감정, 그리고 세상과 자아에 대한 면밀한 탐구를 진행하는 철학등은, 하나의 이야기 로 전달 될 수 있고, 우리는 이러한 이야기를 책과 영화등의 미디어를 통해 전달받고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못한다. 대부분의 소설이나 시놉시스가 우리가 살고있는 또는 살았던 시대에 있었을 법한 일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우리는 별도의 세계관을 가질 필요 없이 그저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몸으로 느끼는 것들을 기반으로 한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아무런 저항없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하지만 판타지 소설이라는건,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구성하기 위해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내야하고, 그 허구의 세계관 속에 우리가 보고 느꼇던 것들을 적당히 얼버무려냄으로서, 독자가 이 소설속의 인물들과 교감하려면 이러한 허구의 세계를 상상해 내고, 이해 해야만 한다. 하지만 세계관이란건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의 일반/특수 상대성 이론이 지배하고, 냉전의 시대를 거쳐 이르른 현대의 우리가 매일 뉴스로 보고 접하는, 우리가 살아왔던 모든 시간동안 보고 느껴왔던 것을 통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세계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판타지에서는 어떤가. 전설의 드래곤과, 대부분이 총보다는 마법검과 마술, 승마, 갑옷 이러한 것들이 통용될 수 있음직한 세계가 있다 라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야 하는 것이며, 만약 이러한 내용에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면 감정이입은 커녕 "말도 안되는 소리" 라며 책을 덮어 버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작가에 의해 창조된 세계관이 다소 허술하거나 빈약하게 된다면, 신기하리만큼 그 집중도를 떨어트리게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 세계관의 창조 작업은 매우 중요하며, 이러한 세계관이 오밀조밀하게 잘 구성된 소설의 경우 엄청난 히트를 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이영도님의 "드래곤 라자"를 어린 시절에 참 많이 읽었는데, 이는 전체 이야기의 굵은 선이 매우 일관적이고, 인물의 묘사가 뛰어나며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세계에 대한 덧붙이는 이야기들이 매우 정교하다. 따라서 첫장부터 등장하는 마법이나 몬스터, 드래곤 등에 대해 "후드가 달린 망토를 입은 마술사", "괴물같이 생긴 인형 생물", "날개달리고 똑똑한 유조선만한 도마뱀" 등의 이미지를 충분히 그릴 수 있다면, 소설이 이야기하는 가치관과, 세상에 대한 작가의 시각을 충분히 즐기며, 등장인물에 대한 공감이 수월하다. 그래서 독자들은 열광하거나, 아니면 아예 소설의 제목만으로 읽어서는 안될 책으로 치부하는, 크게 보면 두 종류로 나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소설들은 보통 세계관을 독자에게 이해 시키기위해, 또는 설명하기위해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주로 모험을 통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성은 일견 무협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인지 무협지를 스스럼없이 읽는 사람은 판타지도 별 무리없이 잘 읽어 내는 듯 하다. 아무튼, '드래곤 라자' 와 전민희님의 '세월의 돌', 이 두개의 소설이 내게는 재미있었던, 그리고 몇차례 다시 읽다 보면 그 내면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도 숨어있을 법한 것들이었다.

드래곤 라자



드래곤 라자의 경우엔, 마치 호텔 레스토랑의 잘 차려진 정식 코스를 먹는 기분이다. 처음과 끝이 깔끔하며, 이야기 전체의 각 부분에 작은 기승전결과 이야기 전체의 기승전결이 존재함으로서 그 짜임새에서 오는 재미가 크고, 상황과 인물의 묘사, 그리고 사건을 대하는 주인공의 가치 판단에 저어함이 없는, 그야 말로 정찬과 같은 소설이었다. 그 세계관의 묘사와 모든 지명, 인물에 대한 작명법 그리고 이야기 안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뛰어난 구성은, 저 뛰어난 김용의 그때 짜맞추는 듯 하지만 재미있는 소설을 뛰어넘는다.

이와 반해 세월의 돌은, 비극적인 결말의 무협지의 성격을 띈다 라는 느낌이 강하다. 주인공은 모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빠른시간에 성장하며, 그것이 타고난 핏줄의 영향인데다가,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며, 거의 마지막 순간에 반항한다. 작가님은 결말을 예견해두고 전체 이야기를 구성했음이 분명하지만, 그 최종의 비극은 짙은 여운을 남긴다. 이 짙은 여운은 전체 이야기가 마치 높은 곳에서 낮은곳으로 물체가 떨어지며 속도를 확보하듯이 진행되는 듯 하다가, 결국 땅바닥에 부딫혀 산산히 조각난다. 이는 전체 이야기를 이루는 몇가지 목적, 크게 모든 종족을 구해낸다와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의 사랑 모두에 반영된다. 하나가 깨졌기 때문에 다른 하나도 깨져야 한다라는, 복선으로 예견되었지만 최종회의 급 이별은 그 진행의 과정이 수긍하기 힘들다. 힘들다 라기 보다는 굳이 수긍하고 싶지 않다. 더군다나 영화나 소설의 여주인공은 굉장한 미인이었을때, 문제가 생기면 슬픔이 배가되는 공식이랄까. 주인공들은 뭔가 불안해 보이는 영원을 약속하고, 결국은 깨어지고. 주인공은 무언가 불안해 보이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가지고 있지만, 역시 깨어지고.



따라서 세월의 돌 같은 경우에는, 다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사실 희망을 갖기는 힘들어 보인다. 노력했지만 가장 신뢰하는 사람으로부터의 배신으로 모든 것을 잃게되는, 그 이후의 과정도 갑작스럽게 3인칭의 시점을 빌려 모호하게 마무리 해 버리는 것 역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저, 모든 내용은 최종의 마지막에 눈물을 짜내기 위한 구성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과 배신이 들정도로, 하지만 진정 그런 감정이 느껴지는것도 어쩌면 슬픈영화 보면서 눈물 빼는것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힘든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그렇지?
- 세월의 돌, 유리카

판타지 소설이라는건 결국 이야기의 근간이 되는 밑바탕의 영역까지 상상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높은 이야기의 자유도를 선사한다. 그 즐거운 상상의 영역으로 빠져들어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눈앞에 그려보는 것이 큰 즐거움일 수 있으며, 사람은 기본적으로 희망적인, 즐거운 방향의 상상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것이 비극으로 끝 나버린다면 거기서 오는 충격은 '악마를 보았다'와 같은 영화에서 오는것에 비해 크게 느껴진다. 유리카와 파비안의 이야기는 슬픈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눈물짓는 남자 주인공만이 남았을 뿐이다. 후치와 헬턴트영지의 미래는 그들의 여행은 끝났지만 밝았다. 

서른이 넘어 스무살 무렵 군대가기 전에 읽었던 소설들을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다. 이야기의 완성도는 제쳐두고, 두 이야기의 시작과 결말이 서로 반대되는, 이를테면 드래곤라자는 주인공의 분노로 시작하지만 평안으로 끝을 맺고, 세월의 돌은 평안으로 시작하지만 슬픔으로 결말이 지어지는, 이 두개의 재미난 이야기들은 삼십대 초반의 나에게도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어보인다.

뭐, 사실 우리 사는 세상이 판타지처럼 돌아가는데 굳이 책에서까지 찾아낼 필요야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것도 나이가 조금 더 들었기 때문에 그런것만은 아닐게다. 좋아하는 사람이 사라진다는건, 가까이 있지만 오감을 통해 인지 할 수 없다는건 꽤나 슬픈 일이라는 걸, 또 그런일에 아직 휘둘리는 나이라서 그런건 아닐까.

내 손에는 유리카의 엔젠이 꼭 쥐어져 있었다. 녹색의 보석... 그리고 그녀의 녹색 눈동자... 잊지 않을꺼야. 잊혀지지 않을 거야.

모든 것이 끝났고, 나는 처음처럼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 세월의 돌



비오는날 코드보다가 급 센치해져서...
뭐 길게 썼지만 난 슬픈 사랑 이야기는 싫은거다.  그냥 그런거다.

(younjin.jeong@gmail.com, 정윤진)